대체복무 현주소는 무늬만 합법…병역기피 낙인 여전

정희완 기자

정부·국회, 사회적 인식 개선 위한 제도 개선 의지 없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편입 여부를 심사받는 모습을 표현한 일러스트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편입 여부를 심사받는 모습을 표현한 일러스트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주간 경향]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여론은 싸늘하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2018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했고, 2020년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됐는데도 그렇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제는 범죄가 아님에도 ‘병역기피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최근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탈락한 사건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방증한다. 군대를 거부해 대체복무를 이행하는데도, 이들을 군인처럼 대하는 게 정당하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관한 인식 개선은 제도 개선과 맞물려 있다. ‘36개월·합숙·교정시설’ 형태의 대체복무는 제도를 설계할 때부터 현재까지 ‘징벌적’이란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것이란 지적도 꾸준하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조용하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넘어 제도 정착을 위한 논의는 언제쯤 시작될 수 있을까.

■“군대문화와 닮은 대체복무”

교정시설에서 약 2년 동안 대체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장길완씨는 지난 3월 25일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법무부에 ‘대체역 복무관리 매뉴얼’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법무부는 부분 공개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장씨는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해당 매뉴얼에는 대체복무요원의 관리·감독과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이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현행 대체복무가 매뉴얼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매뉴얼 중에 양심적 병역거부의 취지와 동떨어진 내용은 없는지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장씨의 주장이다. “대체복무 운영이 지나칠 정도로 군대문화와 닮았기 때문”이다.

교정시설에서 인원점검시간에 반바지와 슬리퍼 착용을 금지하거나 구보를 시킬 때도 있다고 한다. 교정시설 내 군사시설을 청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도 있다고 장씨는 전했다. 그는 지난 3월 25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체복무요원들이 이따금 업무 담당자들이 부과하는 지시에 문제를 제기하면 ‘너희 군대 온 거 아니냐’, ‘군대도 이렇게 편하지 않다’ 등의 대답을 듣기도 한다”라며 “사회에서 평화적 신념을 이행했던 삶의 궤적을 교정시설 내에서 존중받는다고 느끼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반인권적인 대우를 받을 때도 있고, 교정시설마다 업무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운영 형태나 복무 여건에 차이가 난다는 점도 매뉴얼 확인이 필요한 근거로 들었다.

대체복무요원 장길완씨(왼쪽)가 지난 3월 25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의 ‘대체역 복무관리 매뉴얼’ 부분 공개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정희완 기자

대체복무요원 장길완씨(왼쪽)가 지난 3월 25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의 ‘대체역 복무관리 매뉴얼’ 부분 공개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정희완 기자

이런 고충은 다른 대체복무요원들도 겪었다. 주간경향이 지난해 11월 대체복무를 마친 32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군인처럼 대하거나 군인과 비교하는 경우는 여러 번 발생했다”는 취지의 응답이 다수 나왔다. 안악희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은 “대체복무를 선택한 이들에게 군인과 같은 행동과 생활 훈육을 부여하고 군대의 방식을 요구하는 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대체복무가 군대와 똑같다면 이 제도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징벌성 논란 놔두면 제도 취지 퇴색할 것”

장씨는 “법률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돼 있지만, 사회 인식은 다르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했을 때도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교정시설 밖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병역기피’를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건은 단적인 예다. 시민사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차별하고 기피자로 낙인찍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민주당이 과거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고 대체복무 도입에 나섰다는 점에서 비판의 강도는 컸다. 이번 사건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고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 개선은 같이 움직여야 한다. 자연스러운 인식 개선이 요원한 상황에서 제도 개선으로 인식 개선을 견인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런데 복무분야가 교정시설로 국한된 점은 대체복무에 관한 인식 변화를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재와 활동이 사회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등으로 분야를 확대한다면 시민과의 접촉면이 늘어날 수 있다. 앞선 주간경향의 설문조사에서도 대체복무요원들은 “국가의 의무를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다른 분야의 복무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복무분야와 함께 복무기간(36개월), 합숙 등 3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제도의 ‘징벌성’ 논란은 지속하고 있다.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발간한 ‘대체복무 시행 3년, 여전히 제도의 징벌적 성격 논란’ 보고서에서 “법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제도 도입 취지와 정합성, 운영의 합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평가와 개선 방안의 도출은 제도의 징벌적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고 완화·제거할 것인가에 집중돼야 한다”라며 “지속적으로 징벌성 논란과 마주한다면 제도의 도입 취지는 결국 퇴색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무청의 자료를 보면, 대체복무 신청 건수는 2020년 1962건에서 2023년(10월 기준) 267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대체역 신청과 편입 인원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양심의 사유’가 악용될 수 있는 우려할 만한 지표를 확인하기는 어렵다”라고 짚었다.

앞서 지난해 4월 대체역심사위원회가 복무기간을 27개월로 단축하고 복무분야를 확대하는 등의 개선 방안을 병무청에 제안했다. 그러나 병무청은 현재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4월 제도가 악용된 사례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복무기간 단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메아리는 적었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내가 백골부대에서 복무할 때는…”

그러는 사이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대체복무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잇따라 나왔다. “현행 대체복무는 지나치게 징벌적이어서 일종의 대체 처벌로 작용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월 광주지법에서는 대체복무 소집에 응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기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내려졌던 징역 1년 6개월이 부과됐다.

광주지법 형사7단독 전일호 부장판사는 대체복무 거부자에게 유죄를 내리면서 자신의 군 복무 경험을 언급했다. 재판정에서 구두로 밝히고 판결문에도 2쪽에 걸쳐 담았다. 판사가 개인 경험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건 다소 이례적이다.

전 판사는 우선 현행 대체복무제도의 위헌성 여부를 두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체복무가 고역으로서 징벌로 기능하는지’를 놓고는 “대체복무도 병역의 일종으로 다른 병역의무처럼 고역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다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를 선택해 교도소 등에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라며 이런 현상도 징벌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2004~2007년 자신이 육군 법무관으로 백골부대(제3보병사단)에서 복무한 얘기를 써 내려갔다. 전 판사는 병사들의 총기 사망, 성폭행, 탈영, 가난을 이유로 벌인 절도 등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법무관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여러 현역 병사의 군 복무는 고역 그 자체였다”라며 “(이들은) 고역이기 때문에 군 생활이 징벌이라거나 위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체복무가 징벌이 아닌 근거로 20년 전 개인의 경험을 언급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전 판사는 끝으로 “대체복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아 얼마나 고역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 현역병의 복무 강도보다 무겁다고 볼 자료는 없다”고 했다.

해당 내용은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도입의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현역복무와 ‘형평성’만 놓고 단순 비교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과거 1년 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는데,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도 기존에 재소자가 하던 일을 대부분 이어받은 것이다. 여기에 복무기간(36개월)은 수감보다 2배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제복 입은 재소자’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합숙 형태 또한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국민 정서에 기댄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또 ‘현역이 고통을 받는 만큼 대체복무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대체복무제도의 발전은 물론 현역병의 인권 개선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피고인 측은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원이 해당 사건에 적용하는 법률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면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심사해 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서울동부지법에서도 대체복무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재판을 받고 있다. 해당 법원은 헌재에서 심사 중인 헌법소원 결과를 지켜본 뒤 공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헌재에는 대체복무제도가 징벌적이어서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 약 120건이 접수돼 있다. 병무청은 지난 3월 27일 “헌재 판결 결과가 나오면 군 복무 중인 장병과의 형평성,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기존 견해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논의는 최소한 헌법소원 결과가 나온 후에야 가능하다.

1기 대체역심사위원을 지낸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국가가 현역복무만을 최상위의 기여 기준으로 두고, 그 복무기준을 수행할 수 없거나 신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기를 원하는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해왔다”라며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된 후에도 현역복무를 ‘최고’이자 ‘정상’의 기준으로 여기는 위계적이고 이분법적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면, 대체역제도는 도입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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